'
'구스타프 말러와 교향곡, 가장 어려운 음악…그럼에도 구스타프 말러를 듣는 이유는
'
'
11/15 베를린 필하모닉의 말러 교향곡 제 9번 미리 듣기
수입타조추천 0조회 511.11.14 11:54댓
'
From the Sala Santa Cecilia, Rome
Gustav Mahler J
ugendorchester
Claudio Abbado
Chapters:
0:00 Gustav Mahler - Symphony No. 9 in D major
0:40 I. Andante comodo
25:50 II.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Etwas täppisch und sehr derb
41:05 III. Rondo-Burlesque. Allegro assai. Sehr trotzig
53:57 IV. Adagio. Sehr langsam und noch zurückhaltend
'
'
워낙이나 난해한 곡기이기에 도움이 될까 봐 내가 가입한 클래식 카페에 오빠가 올린 글을 옮겨 왔다.
미용이와 강서방은 미리 듣기를 하고 오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서...
미용아 최소 2번 이상은 들어 봐라~!
그리고 긴 글이지만 반드시 읽어 보고...
이번 11월 15일 베를릴 필의 내한 공연 연주곡이 구스타프 말러의 마지막 교향곡 제 9번입니다.
기악방에 말러 교향곡 9번이 있으려니 했는데 아쉽게 없네요.
제겐 말러 곡이 쉽지 않아서 미리 듣기를 하고 가야 악동같이 생긴 못난이 얼굴에 헝크러진 은백 곱슬머리를 얹은
사이먼 레틀의 말러 교향곡 9번을 더 가까이 할 것 같아 이곳에 올려 봅니다.
다 아시겠지만 굉장히 긴 곡입니다.
1악장이 25분이 넘고, 2악장은 15분 이상, 3악장이 14분 여, 9번의 백미라 할 4악장도 23~4분여 넘게 연주됩니다.
휴식시간 없이 악장과 악장 사이 잠시 숨 돌리는 시간 포함해서 80분을 넘겨 거의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대곡으로
연주자나 객석 모두가 아주 힘든 연주곡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러 9번을 연주하는 날에는 앵콜도 사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악장 다 좋지만 마지막 4악장, 그 4악장 마지막의 긴 여운, 숨도 못 쉬게 만드는...,
한참이나 지나고서야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그 긴~~~여운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쪽빛바다입니다.
음~, 기악방에 올려야 하나 그 방은 목하 자우산행님이 시리즈로 베선생의 교향곡을 올리고 있어
감히 비집고 들어가기가 겁이나...
아래 퍼 왔습니다.(해설이 비교적 심도있게 접근해서...)
Gustav Mahler
Symphony No.9 in D major
Berliner Philharmoniker
Herbert von Karajan, conductor
Recorded live at the Berlin Festival of 1982 (Remastered)
Tracklist:
00:00 I. Andante comodo – Mit Wut. Allegro risoluto – Tempo I
28:19 II.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Etwas täppisch und sehr derb – Poco
più mosso subito – Ländler. Ganz langsam
45:00 III. Rondo-Burleske. Allegro assai. Sehr trotzig – Presto
57:54 IV. Adagio. Sehr langsam und noch zurückhaltend
'
교향곡 제9번 "이별" D장조
말러는 이 「제 9번」교향곡에서 또다시 성악을 제외하고 순기악곡을 작곡하였다.
구성적으로는 4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통을 벗어나 제1과 제4악장을 느릿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기법적으로도 이제까지의 교향곡보다 진취적이며 선적(線的)인 대위법을 교묘하게 사용했고,
화성법을 확대하여 새로운 화성 감각을 내는 등, 그러한 것들로 하여금 균형을 넓혀 음체계의 개혁마저도 보이려 했다.
여기에는 조성 조직상 음악의 하나의 한계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말러는 이 곡을 작곡하고 있을 무렵, 체력적으로 무척 지쳐있어서 죽음까지도 종종 생각했었다.
이 곡의 바로 앞에 쓴 「대지의 노래」를 「제 9번」교향곡으로 해야되는 것을
흔히 「제 9번」이라는 작품 주변에 일고 있는 숙명적인 선배 작곡가들의 생애를 참작해서
제 9번」이라 부르는 것은 기피할 정도이기도 했다.
때문에 이번에 작곡된 「제 9번」교향곡에는 말러의 죽음에의 직관적인 자세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제 1악장의 전개풍 부분에 대해
「오! 나의 사라져 버린 젊은 나날들이여. 오! 모두 흘러가 버린 사랑이여...」라고 쓰기도 했고
제 3악장의 첫 머리에는 스케치 할 때 「아폴로에 있는 우리 형제들에게」라고 기록했고
제 4악장의 최후를 「죽는 것처럼」끝내고도 있다.
이와 같이 이 곡에는 죽음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많은 말러 연구가들도 그 점을 인정하고 있으며,
알반 베르크까지도 부인에게 보낸 서간에서 이 곡의 악곡 분석(아날리제)에 즈음해서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1909년 여름, 이 「제 9 교향곡」의 작곡에 착수하여 다음 해 4월1일에 완성했다.
주로 토프라하에서 가까운 알트 슈르델바하에서 피서 중에 작업했으나
10월에 뉴욕에서 지휘자로서의 바쁜 생활의 사이사이에 진행시켜 결국 완성한 셈이다.
그리고 말러는 그 다음해 5월 11일에 세상을 뜨고 말았다.
말러의 사후 1년쯤 후 1912년 6월 12일에 빈에서 제자인 브루노 발터의 지휘로 초연 되었다.
'
'
'
세상을 향한 이별, 피안에 대한 동경, 말러 교향곡 9번
말러 교향곡 9번은 모든 음악적 시도에 대한 마지막 결단이라고 볼 수 있다.
순서대로라면 마땅히 이 작품이 ‘교향곡 10번’이 되어야 할 것이나,
죽음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강박관념과도 같은 두려움 때문에
「대지의 노래」를 교향곡으로 인정하고도 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여러 선배 교향곡 작곡가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9번이라는 숫자가 그에게 부담을 준 것이다.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완성한 것은 1908년 여름이었다.
그 전해인 1907년에 말러는 사랑하는 딸 알마를 잃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바 있다.
그의 마음 속에 죽음이란 것이 구체적으로 떠오른 것은 이때부터였다.
극도로 쇠잔해가는 건강과 정신력의 감퇴를 바라보면서 「대지의 노래」를 썼던 말러는
이승에 대한 강렬한 애착과 함께 피안에 대한 끝없는 동경도 함께 그리면서 그의 9번 교향곡에 착수하게 된 것이다.
1909년 여름, 「대지의 노래」가 완성된 꼭 1년 후에 9번 교향곡을 작곡하기 시작한 말러는
이 곡을 써나갈 즈음에 뉴욕 필하모닉으로부터 상임지휘자의 자리에 초대되어
결국 악보 보따리를 싸든 채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1909년 10월부터 뉴욕필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면서도 그의 마음 속에는 D장조 교향곡에 대한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해서 교향곡 9번은 빈에서 잉태되어 신천지 미국에서 완성을 보게 되었다.
말러는 그의 마지막 곡이 된 9번을 통하여 극도로 긴장된 침통함과 비애감을 속속들이 풀어헤치고 있다.
생명의 소진함을 피부로 느끼면서 다듬어 나간 하나하나의 음표에서 말러는 이승에 대한 확인을 해나가면서도
끝내 보장받지 못한 피안의 세계로 달려나가는 자신을 의식한 것이다.
이 곡에 대해서 빌헬름 멩겔베르크는 말러의 「대지의 노래」가 친구(혹은 인류)에 대한 이별이라면,
9번 교향곡은 사랑한 모든 이에 대한, 세계에 대한, 그의 예술, 삶, 음악에 대한 이별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이별에 대한 말러의 감정은 4악장을 통해 극적으로 나타난다.
4악장의 중간에는 웅변적인 클라이맥스가 놓여있고 그 후에는 점차 규모가 줄어들며
실내악 형태의 현악 합주로만 끝난다.
이 초월적이고 명상적인 마지막 부분에 대해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세상 구경을 다한 말러가 내려와
날개를 접는 것’이라는 묘사를 하기도 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어떤 학자들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네 번째 곡이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 1바이올린은 다음 가사 부분을 조용히 노래한다. ‘저 위에서는 좋은 날이 되겠지.’
말러는 알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미지수와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인류에게 많은 메시지를 전달한 말러는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고 추앙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한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 10번은 미완성인 상태로 남아 있다. 그가 남긴 곡 스케치 속에는
그가 알마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고 있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말러에게 있어 알마는 정신적 위안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알마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함께 말러의 상태를 심하게 뒤흔들어 놓았다.
곡 자체가 물론 어둡고 냉소적이며 고별에 관한 것이지만 곡의 스케치에 놓인 낙서들이 그의 심한 갈등을 잘 설명한다.
예를 들어 4악장의 끝 부분에는 ‘당신(아마도 알마)만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요,
아! 아! 아! 나의 음악이여, 안녕! 안녕! 안녕!’이라고 적혀 있으며,
피날레의 끝 부분에는 ‘당신을 위해 살고, 당신을 위해 죽으리,
알름쉬(알마의 애칭)!’이라고 안쓰러울 정도로 괴로워하는 그의 감정이 담긴 메모가 있다.
알마만을 위해 혼신을 다해 써내려간 교향곡 10번, 그러나 곡은 미완성으로 남았고,
여전히 우리 인류에게 미지수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아다지오 악장은 부천필의 연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 어두움과 두려움의 터널을 지나 말러가 얻고자 했던 평안함을 관객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말러 교향곡 10번은 2003년 11월 29일(토) 오후 7시30분, 말러 교향곡 1번과 함께 연주된다.
'
'
작품의 구성
후기 혹은 말기 작품의 개성과 특징이 말러만큼 뚜렷하게 발견되는 작곡가는 베토벤 이후 거의 없다는 것을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다.
'대지의 노래'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교향곡 9번과 교향곡 10번은 말러가 남겼던 예전의 교향곡과는
그 음악 어법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슈베르트(그의 짧은 생애를 말년으로 구분한다는 것도 우습지만) 정도를 유일하게 이 두 작곡가와 비교할 수 있을까
교향곡보다는 현악 사중주곡과 피아노 소나타에서 강하게 발견되는 베토벤 후기 작품들의 기묘한 화성이
(아마도 귀가 너무 오랫동안 먹어서 기본적인 화성 체계가 조금씩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도 되지만)
독일의 전통적인 형식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듯이,
말러의 경우 내용 면에서는 열정적이고 질풍노도 적이었던 전의 작품에 비해 휙 작품들은 훨씬 체념적이고 초월적이며,
기교 면에서는 쇤베르크 등이 제2비인 악파가 시작한 현대 음악 어법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곡의 배치에 있어 9번 교향곡의 특이한 점은 느린 악장으로 시작되고 느린 악장으로 끝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느린 악장이 마지막에 놓인 3번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 이미 그는 알레그로에 비해 아다지오를
더 고급스러운 형태로 간주하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곡은 시작도 안단테라는 느린 악장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런 점에서 굳이 카를 H. 뵈르너 같은 학자들의 지적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쉽게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두 곡은 악장의 순서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서도 묘하게 닮아 있는데,
이 곡에 대해 오히려 말러는 1901년 경 "수준이 얕고 외향적이며, 형편없이 단조롭다."고 평가한 적이 있다.
악장의 배치뿐만 아니라 역시 지적할 만한 점은 곡의 조성이다.
흔히 D 장조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D 장조의 조성을 가진 악장은 1악장 밖에 없고,
C 장조와 a 단조인 중간 악장을 거쳐, 마지막 악장은 D 플랫 장조로 시작된다.
말하자면 중심 조성이 없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서 전통적인 교향곡의 틀은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그렇다고 각 악장들이 완전히 서로 독립된 것은 아니다. 첫 악장과 마지막 악장이 리듬 동기로 연결되어 있고,
3악장과 마지막 악장은 서로 같은 삽입구를 공유하고 있다.
1악장. 안단테 코모도 Andante comodo
필자로서는 말러의 9번 교향곡이 가지고 있는 많은 점들 중에서 가장 지적하고 싶은 것이 바로 곡을 여는 동기이다.
간단히 9번 교향곡은 '대지의 노래'가 끝난 바로 그 곳에서 출발하고 있다.
'대지의 노래'를 끝맺는 바로 그 동기, 봄의 아지랑이와도 같은 나른함과 절의 풍경(風磬)과도 같은
내세적인 느낌을 주는 첼레스타의 살랑거림을 배경으로 위로하듯이 이어지는 그 동기,
해결음이 없는 두 음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ewig' 동기는, 비올라의 부드러운 웅얼거림을 배경으로
제2바이올린에서 등장하는, 우아한 슬픔을 가진 9번 교향곡의 첫 주제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이 'ewig' 동기와 함께, 곡을 여는 첼로의 붙점 리듬(윌리암 리터가 불규칙한 심장 박동이라고 표현한),
비올라의 웅얼거림이라고 표현한 '상승 단 3도-하강 장 2도' 동기는 1악장 전체를 지배한다.
왜 말러가 '대지의 노래'를 마친 바로 그 곳에서 교향곡 9번을 시작하고 있는지에 대해
작곡가 스스로의 설명을 찾을 수 없는 지금 그 이유를 제시한다고 해도 단지 추측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이 동기가 나타내는 것이 이별이라는 추측은 아주 설득력 없는 것만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못갖춤음의 동기는 '대지의 노래'에서 더 거슬러 올라가, 말러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6번 op. 81a
'이별'이 1악장 '이별'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구조는 말러식 소나타 형식이다. 두 주제가 제시부를 구성하고 제2주제는 같은 으뜸을 단조로 등장한다.
말러는 이 두 주제와 함께 제시부의 종결부도 발전부에서 다루고 있는데(이는 브람스가 자주 사용한 수법이기도 하다),
사실 종결 주제는 부분적으로 제2주제와 같은 소재를 이용한 것이다.
말러의 교향곡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장례 행진은 발전부의 마지막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여기서는 팀파니가 '3도' 동기를 변형해 느린 장례 행진 분위기를 잡아가고 이를 배경으로
트럼펫의 기상나팔과 벨의 '3도' 동기가 울리는 듬 말러 특유의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맛볼 수 있다.
제현부는 '죽음의 상징'이라고 불리는 예의 붙점 리듬으로 시작하며 코다를 지나,
말러의 후기 작품들의 특징 중 하나인 '모렌도(점점 여리게)'로 끝난다.
2악장. 편안한 렌틀러 템포로, 조금 서두르고 매우 거칠게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Etwas täppisch und sehr derb
아도르노, 멩겔베르크 등을 포함해 여러 학자들이 이 악장을 일컬어 '죽음의 무도'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곡은 크게 세 가지 무곡 주제로 이루어졌는데,
첫 부분의 편안한 렌틀러(템포 Ⅰ), 거친 왈츠(템포 Ⅱ), 그리고 느린 렌틀러(템포 Ⅲ)이다.
이 세 무곡은 번갈아 가며 등장하고, 중간에는 왈츠 주제에 두 렌틀러 주제가 조금씩 섞여 나오기도 한다.
전체를 보면 '서투르고 거칠게'라는 지시로 시작되어 여러 무곡들을 거친 후에 매우 세심한 피아니시모로
종결되기 때문에, 브루노 발터는 이를 일컬어 '무도는 끝났다('잔치는 끝났다'이 말러 식?)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3악장. 론도-블를레스크(알레그로 아사이, 매우 완고하게) Rondo - Burleske. Allegro assai. Sehr tratzig
부를레스크는 '농담'을 일컫는 말이다. 장난스러운 음악을 얘기하지만 이 음악이 장르화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구체적인 형식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니다.
R. 쉬트라우스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부를레스크'가 가장 유명한 곡 정도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말러의 부를레스크는 농담으로 들리기에는 너무 거칠고 그야말로 '완고'하며 무시무시하다.
또한 론도라고 붙어 있는 만큼 부를레스크 주제는 대주제 사이에 계속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중간에서 만나는 것은 세 번의 푸가토이다.
이들은 독립된 푸가 주제를 가진 것은 아니고 부를레스크 주제를 이용해 구성한 것이다.
대위 주제와 푸가 주제가 동시에 등장하다 보니 아마 이 부분만 듣는다면 무엇이 푸가 주제인지 혼동되어
3주제 푸가로 간주할 수도 잇을 것이다. 정교하지만 복잡한 전개 방식을 가지고 있고,
특히 주제가 퉁명스러운 점 때문에 R. 쉬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에 등장하는
푸가가 연상되기도 한다.
정신 없이 치고 빠지는 이 악장의 중간에는 4악장을 예고하는 고요한 부분이 놓여 있어 잠시 숨을 돌릴 수도 있다.
4악장. 아다지오 Adagio. Sehr langsam und naco zurückhaltend
웅변적인 이별을 다루고 잇는 이 악장은 대조된 두 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두 주제가 소나타 형식처럼 발전하고 재현된다기보다는 모습을 조금씩 바꾸면서 번갈아 등장한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은 일일 듯 한데,
이런 형식은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두 주제의 변주 형태로 쓰여진 4변 교향곡과 6번 교향곡의 느린 악장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중간에는 웅변적인 클라이맥스가 놓여있고 그 후에는 점차 규모가 줄어들며 실내악 형태의 현악 합주로만 끝난다.
역시 모랜도이다.
이 초월적이고 명상적인 마지막 부분에 대해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세상 구경을 다한 말러가 내려와 날개를 접는 것'이라는 묘사를 하기도 했다.
또한 이 부분에서 예민한 몇 학자들은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의 네 번째 곡이 숨어 잇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제1바이올린은 다음 가사 부분을 조용히 노래한다.
"저 위에서는 좋은 날이 되겠지."
글 : 이일후
'
'
'
^&^ ^&^ ^&^ ^&^ ^&^ ^&^ ^&^ ^&^ |
용어의 정리 (대다수 알고 계실 것이나 쪽빛바다의 성의로 이해해 주세요)
1악장에서
안단테 코모도: 느리나 알맞는 빠르기로 쉽고 편안하게
대지의 노래: 교향곡-연가곡 (1907–1908) : 이 곡은 교향곡이자 연가곡으로도 분류. 말러는 이 곡에 교향곡으로 번호 붙이기를 꺼려했는데, 이는 9번의 저주에 대한 미신적인 두려움 때문이었다함.
아래 링크를 클릭하면 자세한 해설과 음악이 나옴, 잠시 말러 교향곡 음원을 닫은 후 [대지 노래]를 들어 보시면...
(어렵게 찾은 자료이니 클릭하면... 틀림없이 복받을 것임))
http://blog.daum.net/polaris-agnes/16523688
'ewig' : 독일어 에비히, 직역하면 영원히, 그럼 연속성?
잘 모르겠으나 아마 위 1악장 해설에 나오는 [해결음이 없는 두 음으로 이어지는 바로 그 'ewig' ]를 이해하면 될 것
같은데... 자유산행님과 나뚜르님 ~! 도와 주세요
2악장에서
렌틀러 : 렌틀러 (Ländler) 독일의 민속무곡
이 말은 '시골춤'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독일-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즐겨 추던 토착춤이었다.
3/8 또는 3/4박자의 비교적 느린 템포로 이루어졌으며, 19세기에 빈의 궁정 및 그 주변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한 왈츠는
이 렌틀러에서 변형 발생한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독일-오스트리아의 민요들의 간단한 공통점은 3/4박자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3/4박자의 리듬을 가진 독일 민요 중 우리의 귀에 익숙한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가까이에 있는 합창곡집이나,
가곡집을 찾아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영화 'Sound of Music'을 보신 분들은 영화 중간의 파티 장면에서 폰 트랍 대령과 쥴리 앤드류스가 넓은 홀을 무대로 하여
나비처럼 우아하게 손을 붙잡고 춤추던 모습을 기억하시리라 믿는다.
이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이 바로 '렌틀러'이며 이 장면에서의 춤은 원래의 스텝보다는 훨씬 세련되고 복잡한 것이지만
틀림없는 렌틀러의 스텝인 것이다.
렌틀러는 이후 '왈츠(Waltz)'라는 보다 화려하고 우아한 형식의 춤곡으로 발전하였으며,
유명한 요한 슈트라우스 일가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춤곡으로 발전하게 된다.
3악장에서
론도: 론도형식이란 서양음악에서 순환부분을 가진 악곡형식을 말한다.
쉽게 설명을 하면 a - b - a'(a와 비슷)- c - a"(a와 조금 비슷) 이런식으로 반복되는 반복기법이다.
그냥 론도라고도 한다.
4악장에서
모랜도: 점점 느리게 (약하게...)
에~~효~~ 힘들다 힘들어~!
'
'
가장 어려운 음악…그럼에도 구스타프 말러를 듣는 이유는
'
' ◆ 경계가 없는 음악 고전 음악을 깊이 듣다 보면 자연스레 작곡가를 상상하게 된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에는 엄격함과 성스러움이 감돈다. 대위법 원칙을 따르며 수학 문제를 풀 듯 한 치 오차 없이 악보를 그린 바흐. 그의 음악을 들으면 수도승처럼 절제된 삶을 살았을 작곡가가 떠오른다. 모차르트 음악은 맑고 쾌청하다. 천재로 태어난 인간의 순진무구함이 넘실거린다. 쇼팽은 어떤가. 음악을 듣는 순간 극도로 섬세한 영혼을 지닌 예술가의 초상이 아른거린다. 하지만 말러 음악을 듣고 난 뒤엔 작곡가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이런 곡을 만든 사람이라면 꽤 복잡한 사람이었겠구나'라는 생각이 스칠 뿐이다.
고전 음악 중에서도 말러는 진입장벽이 높은 작곡가로 분류돼 있다. 누군가는 말러의 음악을 듣고 깊은 감응에 빠진다. 그들은 말러를 베토벤과 견주며 찬양한다. 하지만 반대쪽에서는 "아무리 들어도 말러는 모르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들은 말러 애호가를 좀체 이해하지 못한다. 고전 음악 작곡가 중 말러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은 바그너 정도뿐이다.
'
'
말러의 음악엔 경계가 없다. 장엄하게 흐르던 곡이 한순간 통속적인 선율로 바뀐다. 감미롭게 마음을 감싸주는 연주가 금세 장송곡으로 변한다. 교향곡 장르가 가지고 있는 기승전결 구조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즉흥적이고 규칙이 없다. 좋게 이야기하면 전위적이고, 거칠게 표현하면 뒤죽박죽이다. 말러는 자신의 음악만큼이나 복잡한 인간이었다.
'
' 7살 때 말러의 모습.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말러는 어린 시절 잇달아 형제들의 죽음을 목격하며 평생 '죽음'이라는 트라우마에 사로잡힌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 ◆ 우울했던 유대인 소년 말러는 낭만파 음악과 현대음악 경계 어딘가에 있는 인물이다. 말러는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분류된다. 동시에 20세기 모더니즘 음악의 문을 활짝 연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변방이었던 보헤미아(오늘날 체코)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럽 주류 사회에서 유대인은 이방인이자 경계인이었다. 말러의 음울한 성격은 유년 시절 크고 작은 차별을 겪으며 형성됐다. 또한 말러는 연달아 형제들을 잃었다. 어린 시절 목격한 가족의 죽음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말러는 일찍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열다섯 살에 빈 음악원에 입학해 정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 전업 작곡가라는 꿈을 꿨다. 열일곱 살에 '탄식의 노래'라는 곡을 쓰기 시작했다. 3년간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이 곡을 베토벤 콩쿠르에 출품했다. 심사위원 중에는 브람스가 있었다. 다른 심사위원 대부분도 브람스의 사람들이었다. 당시 유럽 음악 구도는 브람스와 바그너로 양분돼 있었다. 둘은 대립하는 관계였다. 빈 음악원에서 말러는 브루크너에게 작곡을 배웠다. 말러의 스승이었던 브루크너는 바그너 지지자였다. 굳이 따지면 적의 편에 속하는 말러에게 브람스가 좋은 점수를 줬을 가능성은 처음부터 낮았다. '탄식의 노래'는 베토벤 콩쿠르에서 떨어졌다. 의례적인 칭찬 한마디도 못 받았다.
'
'
' 말러의 지휘 동작을 희화화해 조롱하는 포스터. 말러는 뛰어난 지휘자로 인정받은 동시에 괴팍한 성격과 유대인이란 이유로 종종 공격당하기도 했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
' ◆ 민요를 장송곡으로 뒤틀었다 콩쿠르에서 낙선한 말러는 좌절했다. 전업 작곡가 대신 생계를 위해 지휘봉을 잡는다. 유럽 곳곳에서 지휘자로서 크고 작은 경력을 차근히 쌓았다. 지나치게 꼼꼼했던 말러는 영화 '위플래쉬'(2014) 속 선생처럼 연주자들을 들들 볶으며 완벽을 추구한 지휘자였다. 단원들은 말러를 싫어했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했다. 말러는 본래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지휘자로 일하면서도 휴가를 이용해 곡을 썼다. 1888년 그는 첫 번째 교향곡 '거인'을 완성했다. 1889년 부다페스트에서 자신이 작곡한 곡의 지휘를 맡았다. 결과는 대실패였다. 두 번째 악장까진 그런대로 박수를 받았다.
문제는 세 번째 악장부터였다. 말러는 친숙한 민요를 가져와 불온한 방식으로 패러디했다. 원곡의 따뜻한 분위기를 비틀어 장송곡 버전으로 연주한 것이다. 곧 카바레 풍 대중적 선율도 등장한다. 청중은 말러가 진지한 장르인 교향곡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고 여겼다. 마지막 악장이 시작되자 청중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랐다. 초반부터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선율에 청중은 혼비백산했다.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불길한 불협화음이 이어지더니 마지막엔 별안간 승리의 팡파르를 울리며 마침표를 찍는다. 청중은 야유를 퍼부었다. 말러는 초연 이후 광인 취급을 받았다. 말러를 향한 비판 기저에는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도 큰 몫을 차지했다.
'
' 작곡가로서 연거푸 쓴맛을 봤지만, 지휘자로서는 승승장구했다. 1897년 경력은 정점에 올랐다. 말러는 빈 국립 오페라 극장 총감독으로 지명받는다. 지휘자로서 최고 영예인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출신이 문제가 됐다. 말러가 제안받은 자리는 오스트리아 황실 직속이었다. 이 자리에 유대인이 앉으려 하자 여론이 들끓었다. 말러는 결국 가톨릭으로 개종까지 하며 기회를 잡았다
'
' 클림트의 대표작 '키스'. 작품 속 여인의 실제 모델은 말러의 아내 알마 쉰들러로 알려져 있다.
'
' ◆ 클림트 그림 속 여인과 결혼하다 말러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건 교향곡 5번이다. 특히 이 작품 4악장은 영화와 광고에도 자주 등장할 정도로 유명하다. 동시에 가장 말러답지 않은 곡으로 평가받는다. 누가 들어도 귀에 감기는 서정적인 선율을 시종일관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곡은 말러가 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작곡한 작품이다. 말러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알마 쉰들러라는 여성에게 한눈에 반한다. 교향곡 5번 4악장은 알마의 마음을 얻기 위한 구애곡이다. 1902년 말러는 자신보다 열아홉 살 어린 알마와 결혼한다. 그리고 알마는 말러에게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선사했다.
클림트 그림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키스'다. 찬란한 황금색 옷을 입은 연인이 입을 맞추고 있는 그림이다. 작품 속 여성의 실제 모델이 누구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여러 이름이 거론된다. 그중에서도 알마 쉰들러는 강력한 후보다. 클림트도 알마에게 반한 남자 중 하나였다. 그는 '키스'가 아니더라도 알마를 모델로 여러 그림을 남겼다.
알마는 팜므파탈이었다. 많은 남성 예술가가 알마를 뮤즈로 삼고 구애를 펼쳤다. 그런 알마와 결혼한 말러는 행복하면서도 불안했다. 언제든 알마가 자신을 떠날 수 있을 것이라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비극이 잇달아 발생했다. 둘 사이에 태어난 딸이 병으로 다섯 살에 세상을 떠났다. 반유대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1907년 말러는 쫓겨나듯 빈 오페라 국립극장 총감독 지위에서 내려왔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고, 부부 관계에 흠집이 났다. 알마는 결국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알마의 외도 상대는 훗날 독일 '바우하우스'를 설립한 발터 그로피우스였다. 말러의 심신은 너덜너덜해졌다. 프로이트에게 상처를 털어놓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프로이트와 상담을 한 이듬해인 1911년 말러는 눈을 감았다.
'
말러의 교향곡을 연주하며 전 세계에 말러 열풍을 일으킨 레너드 번스타인. /사진=매경DB
'
' ◆ "언젠간 내 세상이 올 것이다" 말러는 "나는 교향곡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담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세상은 어떠했나. 말러는 길거리에서 자랐다. 그래서 그의 교향곡엔 온갖 세속적인 소음이 섞여 있다. 말러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평생을 이방인으로 살았다. 그래서 그의 음악엔 깊은 비애가 깔려 있다. 말러는 형제와 어린 자식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래서 그의 교향곡엔 죽음의 기운이 짙게 서려 있다. 조롱받고, 무시당하면서도 교향곡 10개를 완성했다. "언젠간 내 세상이 올 것이다"고 확신했지만 자신의 눈으로는 확인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말러의 세상'은 1960년대에 왔다. 말러의 제자 중에는 브루노 발터가 있었다. 유대인이었던 브루노 발터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는다. 1942년 브루노 발터는 독감에 걸려 어쩔 수 없이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새파랗게 어린 지휘자가 대타로 무대에 올랐고, 일약 스타가 됐다. 그는 레너드 번스타인이다. 말러 음악에 심취했던 번스타인은 어둠에 묻힌 작곡가를 다시 꺼냈다. 그는 말러가 남긴 모든 교향곡을 차례대로 녹음했다. 번스타인 덕분에 말러의 교향곡은 빛을 봤다. 말러의 인기는 소나기로 끝나지 않았다. 번스타인 이후 현재까지도 말러는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늘날 말러는 '팬덤'을 거느린 몇 안 되는 고전 음악계 스타다. 말러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을 통칭하는 '말러리안'이라는 단어까지 있다. 물론 '말러리안'에게도 말러의 음악은 쉽지 않다. 난해하고, 불안하고, 소란스럽고, 고독하고, 가끔씩만 아름답기 때문이다. 말러의 삶이 그러했듯 말이다. 말러는 좌절하고, 분노하고, 불안에 사로잡혔지만 그럼에도 다시 길을 찾고 앞으로 걸었다. 이 모든 과정을 교향곡 10개에 담았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앞으로도 계속 만만치 않을 것이다.
제대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돌아보면 길을 잃은 것 같은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불안, 불행,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은 없다. 롤랑 바르트가 적었듯이 '누구나 자기만이 알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아픔의 리듬 속에 갇힌 날, 그런 날엔 피난처라고 생각하고 말러의 음악에 도전해 보자. 무언가가 들릴지도 모른다.
[조성준 기자]
'
Franz Schubert - Die schöne Müllerin, D. 795/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 (6) | 2024.11.03 |
---|---|
프란츠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 ( 겨울 나그네 (4) | 2024.11.03 |
박종해 피아니스트 (0) | 2024.02.14 |
사계 비교 감상하기 (0) | 2023.07.12 |
2023 아티스트 시리즈 1. 박종해 in Schumann (1) | 2023.03.17 |